낮술을 마신 건가, 아니면 대마초를 흡입한 게 아냐?
조 대리는 휴대폰을 뜨악하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내임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출근 이후에는 천지가 개벽을 하더라도 전화를 걸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것은 신혼 여행지에서였다. 아내는 한 번도 그 말을 어기지 않았다. 무려 7년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내는 금기를 어긴 것이다.
여보, 여보. 큰일 났어. 아니, 큰일이 아니라 대박이 터졌어.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았어. 현대는 신용 시대라고 했잖아?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아요? 하지만 참아요. 탑 시크리트니까. 여보, 사랑해요.
아내는 열에 달뜬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무언가 대박이 터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일까? 기껏해야 백화점 세일 기간에 응모한 경품권이 세탁기나 김치 냉장고로 당첨되었다든지 하는 일이 고작일 것이다. 아내가 복권을 산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조 대리의 손끝에서 갈색이 배인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깟 세탁기나 김치 냉장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조 대리는 아내 몰래 뒷갈망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큰일이었다. 걸핏하면 아내가 신용 사회를 살아가는 요령을 모른다며 그녀를 무지렁이로 몰기 일쑤였던 조 대리는 그 신용이 사람 때려잡는 신용이라는 걸 톡톡히 경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필 그 날 필름이 끊긴 것이다. 2차를 나가고 싶다는 큐 단란주점의 아가씨와 함께 여관방을 잡은 것까지는 가물가물 기억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 다음 일은 도무지 기억의 벼리 속에 담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지갑 속에 남은 것은 한도액대로 긁은 현금 인출기 영수증뿐이었다.
조 대리는 애꿎은 현금 인출 기능 겸용의 신용 카드만 노려보다 서둘러 지갑 속에 디밀어 넣었다. 부장의 힐끔거리는 눈매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도 조 대리는 당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내의 히힝거리는 콧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가물가물 남아 있었지만 술 한 잔을 걸치지 않고 그냥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 대리는 동료 직원 몇 명을 나꾸어 보았다. 하지만 이 날 따라 모두들 선약이 있다며 조 대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만년 대리 주제에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일, 하릴없이 동창 녀석들의 전화 번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사무실 안은 파장을 지낸 무렵인지 쓸쓸하기만 했다. 그 때 조 대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당신이야? 빨리 와. 대박이 터졌다니까."
알았어, 라고 대답은 했지만 포장마차의 고소한 구이 냄새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신용 카드 사용의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이 안 되려고 그리 하는지 도무지 연락이 닿는 녀석들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 대리는 집을 향해 방향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짐작보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난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 대리의 주먹만한 상추쌈을 냅다 들이밀던 아내의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조 대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 아버님은 구세주야. 신(神)이라구."
조 대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 7년 동안 아내가 아버지를 칭찬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일은 처음이었다.
"아버님이 재테크에도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
물색을 알지 못하는 조 대리는 벙긋거리는 아내의 입으로만 눈동자를 휘휘거렸다.
"오늘 창고 정리를 했지. 당신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잡동사니를 담아 놓은 박스들 있잖아? 그걸 열어보니 글쎄 그 중의 하나에 주식(株式)이 담겨 있지 뭐야."
조 대리는 놀라움에 항문이 꽉꽉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하기는 그럴 만도 했다. 선친은 임종하실 때 특별히 유언이랄 만한 이야기를 남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선친의 신산스런 삶을 생각할 때 뭐 대수로운 게 있겠느냐고 박스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주식이 얼마나 들어 있다는 거야?"
"십만 주야."
"십만 주? 오, 할렐루야!"
조 대리는 골문을 가른 슈터처럼 양손을 부르르 떨다가 아내를 덥석 껴안았다. 신혼 무렵 이후로 도대체 얼마만에 아내를 힘주어 껴안은 것일까.
"십만이면 도대체 돈이 얼마야? 회사 이름은 뭐였어? 아니 내가 직접 보자구. 그래야 실감이 날 것 같아."
아내는 안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이내 장롱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십만 주의 주식을 신주 단지 모시듯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 그리 하는 것이 지극히 온당한 노릇이었다. 드디어 아내가 커다란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조 대리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아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종이로 만들어진 보석 덩어리가 그 속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 대리는 그 중의 한 덩어리를 집었다. 그리고 회사를 확인했다. 광명 목재(光明木材). 고개를 갸웃하던 조 대리는 기어이 꺽꺽거리는 웃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광명 목재는 퇴출된 지 오래된 기업체였던 것이다.
아내는 여전히 열에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신용 화폐가 좋긴 좋지?"
조 대리는 휴대폰을 뜨악하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내임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출근 이후에는 천지가 개벽을 하더라도 전화를 걸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것은 신혼 여행지에서였다. 아내는 한 번도 그 말을 어기지 않았다. 무려 7년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내는 금기를 어긴 것이다.
여보, 여보. 큰일 났어. 아니, 큰일이 아니라 대박이 터졌어.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았어. 현대는 신용 시대라고 했잖아?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아요? 하지만 참아요. 탑 시크리트니까. 여보, 사랑해요.
아내는 열에 달뜬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무언가 대박이 터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일까? 기껏해야 백화점 세일 기간에 응모한 경품권이 세탁기나 김치 냉장고로 당첨되었다든지 하는 일이 고작일 것이다. 아내가 복권을 산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조 대리의 손끝에서 갈색이 배인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깟 세탁기나 김치 냉장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조 대리는 아내 몰래 뒷갈망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큰일이었다. 걸핏하면 아내가 신용 사회를 살아가는 요령을 모른다며 그녀를 무지렁이로 몰기 일쑤였던 조 대리는 그 신용이 사람 때려잡는 신용이라는 걸 톡톡히 경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필 그 날 필름이 끊긴 것이다. 2차를 나가고 싶다는 큐 단란주점의 아가씨와 함께 여관방을 잡은 것까지는 가물가물 기억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 다음 일은 도무지 기억의 벼리 속에 담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지갑 속에 남은 것은 한도액대로 긁은 현금 인출기 영수증뿐이었다.
조 대리는 애꿎은 현금 인출 기능 겸용의 신용 카드만 노려보다 서둘러 지갑 속에 디밀어 넣었다. 부장의 힐끔거리는 눈매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도 조 대리는 당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내의 히힝거리는 콧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가물가물 남아 있었지만 술 한 잔을 걸치지 않고 그냥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 대리는 동료 직원 몇 명을 나꾸어 보았다. 하지만 이 날 따라 모두들 선약이 있다며 조 대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만년 대리 주제에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일, 하릴없이 동창 녀석들의 전화 번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사무실 안은 파장을 지낸 무렵인지 쓸쓸하기만 했다. 그 때 조 대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당신이야? 빨리 와. 대박이 터졌다니까."
알았어, 라고 대답은 했지만 포장마차의 고소한 구이 냄새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신용 카드 사용의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이 안 되려고 그리 하는지 도무지 연락이 닿는 녀석들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 대리는 집을 향해 방향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짐작보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난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 대리의 주먹만한 상추쌈을 냅다 들이밀던 아내의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조 대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 아버님은 구세주야. 신(神)이라구."
조 대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 7년 동안 아내가 아버지를 칭찬하는 얘기를 늘어놓는 일은 처음이었다.
"아버님이 재테크에도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
물색을 알지 못하는 조 대리는 벙긋거리는 아내의 입으로만 눈동자를 휘휘거렸다.
"오늘 창고 정리를 했지. 당신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잡동사니를 담아 놓은 박스들 있잖아? 그걸 열어보니 글쎄 그 중의 하나에 주식(株式)이 담겨 있지 뭐야."
조 대리는 놀라움에 항문이 꽉꽉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하기는 그럴 만도 했다. 선친은 임종하실 때 특별히 유언이랄 만한 이야기를 남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선친의 신산스런 삶을 생각할 때 뭐 대수로운 게 있겠느냐고 박스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주식이 얼마나 들어 있다는 거야?"
"십만 주야."
"십만 주? 오, 할렐루야!"
조 대리는 골문을 가른 슈터처럼 양손을 부르르 떨다가 아내를 덥석 껴안았다. 신혼 무렵 이후로 도대체 얼마만에 아내를 힘주어 껴안은 것일까.
"십만이면 도대체 돈이 얼마야? 회사 이름은 뭐였어? 아니 내가 직접 보자구. 그래야 실감이 날 것 같아."
아내는 안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이내 장롱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십만 주의 주식을 신주 단지 모시듯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 그리 하는 것이 지극히 온당한 노릇이었다. 드디어 아내가 커다란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조 대리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아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종이로 만들어진 보석 덩어리가 그 속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 대리는 그 중의 한 덩어리를 집었다. 그리고 회사를 확인했다. 광명 목재(光明木材). 고개를 갸웃하던 조 대리는 기어이 꺽꺽거리는 웃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광명 목재는 퇴출된 지 오래된 기업체였던 것이다.
아내는 여전히 열에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신용 화폐가 좋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