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조선 시대 노비제에 대한 양반들의 다양한 시각 / (나) 19세기 말 민권에 대한 논의’

지문해설 : (가)는 왜란과 호란 이후 노비의 수가 감소하고 양인과 노비의 신분 격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나타난 노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양반들은 노비에 대한 글을 통해 노비의 애환에 관심을 두며 미안한 심경을 드러냈지만 신분 질서를 정면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 이와 달리 실학자 이익은 조명(造命)의 대상을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여 노비도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국가의 역할은 조명이 가능한 최소한의 기반을 보장해 주고 결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제] 양란 이후 노비에 대한 양반들의 인식 변화와 이익의 견해
지문해설 : (나)는 19세기 말부터 서구의 기본권 사상이 알려지며 구체화된 민권에 대한 논의를 설명하고 있다. 급진 개화파인 유길준과 박영효는 법을 통해 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였고, 김윤식을 비롯한 온건 개화파는 민(民)의 평등을 인정하면서도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였다. 개화파의 주장은 갑오개혁의 신분제 폐지라는 법제상 조치로 이어졌지만 사회적 차별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에 백정들의 인권 존중을 요구하는 형평 운동이 전개되었다. 형평 운동은 내부 분열과 갈등, 일제의 억압으로 위축되었지만, 이후의 인권 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주제] 19세기 말 이후 구체화된 민권에 대한 논의의 전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조선 시대의 노비는 주인이 상속․매매할 수 있는 물적 성격을 지녔지만, 재산권 및 소송권 등 자유와 권리도 부분적으로 인정받았다. 조선 전기에 증가하던 노비의 수는 왜란과 호란 이후에 감소 추세를 보였고, 여러 사정으로 양인과 노비의 신분 격차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노비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고, 이전에는 찾기 어려운 ㉠ 양반들의 노비에 대한 글로 구체화되었다.
양반들은 노비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행적을 기록한 여러 글을 통해 노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표면화하였다. 충성스러운 노비를 충(忠)이라는 성리학적 이념을 투사하여 칭송하였고, 노비를 작고 연약한 존재로 형상화한 시선은 주인이 노비를 대하는 온정적 차원에 머물렀다. 노비의 의연한 행동과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노비의 불평등한 여건과 처지는 거론하지 않았다. 빈한한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노비의 애환에 관심을 ⓐ 두면서 노비에 대한 미안한 심경은 드러냈지만 신분 질서를 정면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러한 양반들의 시각과 달리, 실학자 ㉮ 이익(李瀷)은 다른 각도에서 노비 문제에 접근하였다. 그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명(天命), 천체의 운행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영역인 성명(星命), 시세(時勢)에 따라 인간의 힘이 참여하는 조명(造命)으로 운명을 나누었다. 천명과 성명은 인간이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자연 이치로 간주하고, 조명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빈부, 귀천 등을 바꾸어 가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조명의 대상을 왕과 고관대작으로 한정했던 이전 학자들의 논의와 달리, 노비를 포함한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였다. 그는 사회의 전 구성원이 주어진 상황에서 각자의 노력으로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신분은 세습이 아닌 개인의 재주와 덕행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본 그는, 노비의 매매와 세습을 금지하면 노비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는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기회를 개방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인간 삶의 변화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국가의 역할은 조명이 가능한 최소한의 기반을 보장해 주고 결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
19세기 말부터 서구의 기본권 사상이 알려지면서 민권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었다. 임오군란 이후, 급진 개화파는 사회 개혁의 핵심 중 하나로 민권 신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 유길준은 근대 국민 국가 달성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민(民)에 주목하였다. 그는 민에게는 절대적인 천부 인권 이외에 사회 계약에 의한 상대적 권리인 인위적 권리가 있고, 두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근대적인 법률의 제정과 시행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민은 무지한 존재였기 때문에 교육받지 않으면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박영효는 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권(國權)도 위태롭다고 보았다. 그리고 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을 통해서만 존재 가능하고, 법을 지킬 때만 보호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김윤식을 비롯한 온건 개화파는 국가의 노비 세습 금지령 공포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인간은 타고난 능력에 따라 귀천이 생기고 이에 따라 부림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민의 평등을 인정하면서도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민권에 관한 개화파의 주장은 여러 상황과 맞물려 갑오개혁의 신분제 폐지라는 법제상 조치로 이어졌지만, 노비는 잔존했고 사회적 차별도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 협회는 자유와 평등은 하늘이 준 권리임을 근거로 노비 소유와 매매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신분 차별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별받던 백정들의 인권 존중을 요구하는 형평 운동이 전개되었다. 1923년에 경남 진주에서 형평사가 조직되어 시작된 이 운동은 경제적 부를 쌓은 백정들과 사회 운동가들이 결합하여 본격화되었고, 이후 대중의 호응을 이끌며 전국화되었다. 이 운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이루려는 인권 운동이자 참여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공동체 운동의 성격을 가졌다. 이 운동의 도화선이 교육 차별이었던 만큼, 사회적 대우를 받으려면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교육 활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회원들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이를 제도화하고자 분투하였다.
다른 사회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변화를 모색했던 형평 운동은 내부 분열과 갈등, 일제의 억압이 이어지면서 위축되었고, 1935년에 형평사가 대동사로 개칭되면서 운동 본래의 성격을 잃었다. 하지만 불평등한 사회의 개혁을 추구한 이 운동은 이후의 인권 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4.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는 노비제를 비판한 학자들의 인식 차이를, (나)는 노비제 폐지로 인해 발생한 사회 문제를 제시하였다.
② (가)는 노비가 겪는 불합리한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나)는 국가 정책에 대한 개화파들의 찬반 의견을 제시하였다.
③ (가)는 조선 시대 노비제에 대한 특정 실학자의 견해를, (나)는 민권에 관한 논의가 전개된 역사적 흐름을 서술하였다.
④ (가)는 노비에 대한 양반들의 여러 견해를, (나)는 민권 개혁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을 서술하였다.
⑤ (가)는 양반과 노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한계를, (나)는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민권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서술하였다.
정답해설 : (가)는 조선 시대 노비제에 대한 실학자 이익의 견해를 서술하였다. 그리고 (나)는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의 주장, 그리고 개화파의 주장이 신분제 폐지로 이어진 후 일제 강점기의 형평 운동에 이르기까지 민권에 관한 논의가 전개된 역사적 흐름을 서술하였다. 정답 ③
[오답피하기] ① (가)에는 이익 외에 노비제를 비판한 학자의 인식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나)에는 신분제가 폐지된 뒤에도 노비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어, 이에 저항하는 형평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비제 폐지로 인해 발생한 사회 문제라고 볼 수 없다. ② (가)에는 노비의 매매와 세습에 관한 내용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노비가 겪는 불합리한 사회 현실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나)에는 신분 차별에 대한 개화파들의 찬반 의견이 제시되어 있을 뿐, 국가 정책에 대한 개화파들의 찬반 의견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④ (가)에는 노비에 대한 양반들의 여러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나)에는 민권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 역사적 흐름이 제시되어 있을 뿐, 민권 개혁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⑤ (가)에는 양반과 노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한계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반면 (나)에는 유길준이 근대 국민 국가 달성을 위해 민에 주목하였다는 내용, 박영효가 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권도 위태롭다고 보았다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통해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민권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5.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지배층의 이념에 따라 행동한 노비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록하였다.
② 노비와 양인의 신분 격차가 줄어들면서 노비들이 갖게 된 인식을 형상화하였다.
③ 양반이 노비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약자로 여기는 태도를 반영하였다.
④ 노비의 애환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간과하였다.
⑤ 굳센 의지를 지닌 노비의 행동을 부각하면서도 노비가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정답해설 : ㉠은 주로 노비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는 노비에 대한 양반들의 인식 변화가 구체화되어 있을 뿐이다. 노비와 양인의 신분 격차가 줄어들면서 노비들이 갖게 된 인식이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 정답 ②
[오답피하기] ① (가)의 2문단에서 양반들은 충성스러운 노비를 충(忠)이라는 성리학적 이념을 투사하여 칭송하였다고 했다. ③ (가)의 2문단에서 노비를 작고 연약한 존재로 형상화한 시선은 주인이 노비를 대하는 온정적 차원에 머물렀다고 했다. ④ (가)의 2문단에서 빈한한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노비의 애환에 관심을 두면서 노비에 대한 미안한 심경은 드러냈지만 신분 질서를 정면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양반들이 정면에서 문제 삼지 않은 신분 질서는 노비가 애환을 겪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⑤ (가)의 2문단에서 노비의 의연한 행동과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노비의 불평등한 여건과 처지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했다.
6. ㉮, ㉯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비판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는, ㉯가 인간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겠군.
② ㉮는, ㉯가 인간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겠군.
③ ㉮는, ㉯가 국가의 기본 체제를 제시하지 않고 개혁을 논의하였다는 점을 비판하겠군.
④ ㉯는, ㉮가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여 개인의 발전 기회를 차단한다는 점을 비판하겠군.
⑤ ㉯는, ㉮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자연적 이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겠군.
정답해설 : ㉮는 신분이 세습되어서는 안 되고 개인의 재주와 덕행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를 통해 ㉮가 인간에 대한 차별적 의식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는 민을 무지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교육받지 않으면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가 ㉯에 대해 인간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다. 정답 ①
[오답피하기] ② ㉯는 민을 무지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교육받지 않으면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가 교육의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③ ㉯는 근대 국민 국가 달성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민에 주목하였으며, 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대적인 법률의 제정과 시행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가 국가의 기본 체제를 제시하지 않고 개혁을 논의하였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④ ㉮는 국가의 역할은 조명이 가능한 최소한의 기반을 보장해 주고 결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가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여 개인의 발전 기회를 차단했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⑤ ㉮는 천명(天命)과 성명(星命)을 인간이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자연 이치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자연적 이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7. (나)의 ‘형평 운동’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형평사를 중심으로, 개인의 소양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는 부당함을 비판하였다.
② 백정에 대한 차별 문제 해결과 함께 형평사 회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③ 백정들이 처한 경제적 불평등을 제도적 차원에서 해소하기 위한 활동이 중심이었다.
④ 형평사가 대동사로 개칭되면서 교육을 통해 참여자들의 평등한 권리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⑤ 일제의 억압으로 발생한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정답해설 : (나)의 4문단에서 차별받던 백정들의 인권 존중을 요구하는 형평 운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이루려는 인권 운동이자 참여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공동체 운동의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이를 통해 형평 운동이 백정에 대한 차별 문제 해결과 함께 형평사 회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답 ②
[오답피하기] ① (나)의 4문단에서 형평 운동의 도화선이 교육 차별이었던 만큼, 사회적 대우를 받으려면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교육 활동이 펼쳐졌다고 했다. 따라서 형평 운동에서 개인의 소양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③ 형평 운동의 도화선은 교육 차별로, 사회적 대우를 받으려면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교육 활동이 펼쳐졌으며, 그 회원들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제도화하고자 분투하였다고 했다. 따라서 형평 운동은 백정들이 처한 경제적 불평등을 제도적 차원에서 해소하기 위한 활동이 중심이었다고 볼 수 없다. ④ 형평 운동은 내부 분열과 갈등, 일제의 억압이 이어지면서 위축되었고, 1935년에 형평사가 대동사로 개칭되면서 운동 본래의 성격을 잃었다고 했다. ⑤ 형평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도 신분 차별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라고 했으므로, 일제의 억압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형평사가 조직되어 시작된 형평 운동은 경제적 부를 쌓은 백정들과 사회 운동가들이 결합하여 본격화되었다고 했으므로, 사회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8. (가), (나)를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서양의 고대 사상가들은 대체로 노예제의 정당성을 인정하였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본래부터 심사숙고 능력이 없는 노예는 시민과 구별하여 철저하게 정치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보았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사회의 공리(功利)를 극대화하지 않는 모든 제도와 법률의 근본 개혁을 촉구하며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유럽 각국의 식민 지배에 따라 노예를 사고파는 노예 무역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노예들의 빼앗긴 자유를 회복시키자는 노예 해방론이 제기되었다. 노예제하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노예에서 해방되어 문학적 성취를 이룬 노예 출신 작가들은 노예를 차별할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며 노예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① <보기>의 노예를 정치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나)의 김윤식의 주장은 모두, 인간의 타고난 능력의 차이를 인정한 것이겠군.
② <보기>의 사회의 공리를 극대화하지 않는 법률의 근본 개혁을 촉구한 주장과 (나)의 박영효의 주장은 모두, 인간의 권리 보장을 위해 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군.
③ <보기>의 식민 지배에 따른 노예 무역의 대상이었던 노예와 (가)의 조선 시대의 노비는 모두, 소유주의 뜻에 따라 매매의 대상이었다는 것이겠군.
④ <보기>의 노예들의 빼앗긴 자유를 회복시키자는 주장과 (나)의 독립 협회의 주장은 모두,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군.
⑤ <보기>의 노예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노예 출신 작가의 성취와 (가)의 이익의 주장은 모두, 사회 제도의 변화를 위한 능동적인 행위의 당위성과 결부된 것이겠군.
정답해설 : (가)의 이익은 노비의 매매와 세습을 금지하면 노비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익의 주장은 사회 제도의 변화를 위한 능동적인 행위의 당위성과 결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기>의 노예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노예 출신 작가의 성취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 제도의 변화를 위한 능동적인 행위의 당위성과 결부된다고 보기 어렵다. 정답 ⑤
[오답피하기] ① <보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가 본래부터 심사숙고 능력이 없다고 보았고, (나)의 김윤식은 인간은 타고난 능력에 따라 귀천이 생기고 이에 따라 부림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두 주장이 모두 인간의 타고난 능력의 차이를 인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② (나)의 박영효는 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을 통해서만 존재 가능하고, 법을 지킬 때만 보호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사회의 공리를 극대화하지 않는 법률의 근본 개혁을 촉구한 주장과 (나)의 박영효의 주장이 모두 인간의 권리 보장을 위해 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③ (가)에서 조선 시대의 노비는 주인이 상속‧매매할 수 있는 물적 성격을 지녔다고 했다. 따라서 <보기>의 식민 지배에 따른 노예 무역의 대상이었던 노예와 (가)의 조선 시대의 노비가 모두, 소유주의 뜻에 따라 매매될 수 있는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④ (나)의 독립 협회는 자유와 평등은 하늘이 준 권리임을 근거로 노비 소유와 매매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노예들의 빼앗긴 자유를 회복시키자는 주장과 (나)의 독립 협회의 주장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9. 문맥상 ⓐ와 가장 가까운 의미로 쓰인 것은?
① 우리 반은 오래도록 염원하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② 학교는 학생회에 기획부, 총무부, 체육부 등을 두고 있다.
③ 그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
④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났던 친구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
⑤ 그의 판단은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답해설 : ⓐ의 ‘두면서’는 문맥상 ‘생각 따위를 가지다.’의 의미로 쓰였다. 제시된 문장 중에서 ‘나는 ~ 친구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의 ‘두고’가 가장 가까운 의미로 쓰인 것이다. 정답 ④
[오답피하기] ① 이 문장에서 ‘두고’는 ‘어떤 상황이나 상태 속에 놓다.’의 의미로 쓰였다. ② 이 문장에서 ‘두고’는 ‘직책이나 조직, 기구 따위를 설치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③ 이 문장에서 ‘두고’는 ‘어떤 사람을 가족이나 친인척으로 가지다.’의 의미로 쓰였다. ⑤ 이 문장에서 ‘두고’는 ‘행위의 준거점, 목표, 근거 따위를 설정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2027학년도 6월 평가원 독서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