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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사람 증후군

 

모두들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 불교에서 말하는 아수라 같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짓밟은 적이 없고, 법을 어긴 적은 더더구나 없다.

 

그런데, 착한 사람이 반드시 선일까? 착한 사람들이 오히려 남에게 아픔을 주지나 않을까?

 

나는 착하니까 옳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면 그것이 혓바닥 밑의 예리한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착하니까 이런 말을 해도 돼. 나는 선하니까 이런 행동을 해도 남들이 이해해 줄 거야.

 

이것은 자기 중심적 사고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데, 착함이 기준이 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것의 빈도가 잦아지면 '착한사람 증후군'이 된다.

 

왜 사람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지? 하는 무기력감에 빠져들고, 밖으로 드러날 때는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해 의도하지 않은 공격 성향이 드러난다. 착하기 때문에 상대를 소외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착한사람 증후군'이다.

 

사회로 확장해도 마찬가지이다. 86세대가 왜 유독 성범죄의 덫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을까.

 

반민주 체제에 저항하며 고독하게, 고통스럽게 젊은 날을 태워야 했는데, 어느 날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꽃이 탐스럽게 피었고, 그것들이 내 젊은 날과 맞바꾼 과실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 뿌듯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면 균형 감각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나는 옳아, 나는 정의야, 하는 의식 과잉이 지배할 때, 반성과 성찰이라는 소중한 삶의 방식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자기만을 중심에 놓을 때, 사람은 오류를 피할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