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유쾌한 악동, 전우치


크리스마스입니다. 가족과 함께 영화 <전우치>를 보고 왔습니다.

포스트를 작성하기 전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를 읽어 보았는데, 최동훈 감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실망스럽다는 견해들이 많이 올려져 있더군요. 구성과 CG,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류였는데, 제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재미 있습니다.

흥행의 첫째 요소인 선악의 뚜렷한 대비 구조를 가지고 있고, 강동원, 유해진의 가벼움과 김윤석의 진지함이 대비되어 있으며, 감초 연기의 달인 유해진과 김상호의 겉절이 연기도 좋았습니다. 화려한 CG 기술과 와이어 액션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한국형 히어로를 표방한 것처럼 토속적 정서도 속속들이 배어져 있습니다. 카푸치노를 마시면서도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즐겨 먹는 우리네 습성에 어울리는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배트맨이나 슈퍼맨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의 한국형 히어로 창조에 성공했다는 느낌입니다.

다음, 줄거리가 나름 탄탄합니다.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이 버무려져 있음에도 잘 비벼진 비빔밥 같은 느낌입니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습니다. 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는 원작의 핵심 줄거리를 훼손하지 않고 용해시켰습니다. 고전과 현대의 시간적, 공간적 이동이나, 만파식적 설화와 요괴의 연결이 매끄럽습니다.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한정된 시간 안에 상영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썩 잘 처리한 구성입니다.

그 다음, 낯뜨거운 장면이 없어 편안합니다.

가족 또는 연인이 함께 하기에 쑥스러운 장면이 없습니다. 웃으면서 영화 관람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데이트를 하기에 좋습니다. 코미디를 통해 엔돌핀을 증가시키고 다음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시비를 걸려면 시비거리도 있어 보입니다. 산만하다는 느낌이 주된 공격 대상이 될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등장 인물 때문에 산만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이 <전우치전>이 아닌 <전우치>라는 것. 특정 주인공에 방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살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전우치역의 강동원, 화담역의 김윤석, 초랭이역의 유해진, 세 명의 신선(주진모, 송영창, 김상호), 그리고 임수정.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배역들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살렸다는 것은 각본의 힘, 감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수정의 캐릭터는 조금 약하다는 느낌입니다.



구성 때문에 산만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파식적, 고전소설 <전우치전>, 화담, 12지신이라는 여러 종류의 가공된 '팩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음에도 일관된 줄거리를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 구성상의 능력이 탁월함을 보여 줍니다. 최동훈이라는 이름 석 자를 더욱 선명하게 가슴 속에 각인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영화의 전체 구성상 현대적 공간이 중심적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하지 않았느냐 하는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간략하게 처리하였다면 아마도 심형래의 <디 워>와 같은 욕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연성이나 설득력에서 지적을 받았을 거란 말입니다. 영화 관객들 중에서 만파식적의 유래나 고전소설 전우치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12지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CG 처리에 대한 시비거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우치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스승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 원용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만화 장면 같다며 안이한 CG 처리 기술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였다면 영화 제목이 전우치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정해졌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 영화의 줄거리가 이제는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며, 재미 면에서는 썩 훌륭하다는 것이며, 볼거리도 충분하고, 가벼운 코미디물로 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